마음의소리

누가 원격 의료를 필요로 하는가?, 정재오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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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원격 의료를 필요로 하는가?

몇 년 전 필자는 호주에 여행을 가서 세상의 중심이라는 울룰루를 보기 위해 사막 한 가운데 세워진 도시인 앨리스 스프링스를 방문했다. 호주의 1킬로평방미터 당 의사 수는 0.01 명으로, 호주는 이미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이다. (한국의 경우 이는 0.98 명으로 거의 100배 가까이 많은 편이다.) 실제로 넓은 땅 군데군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병원에 다니는 것일까? 응급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를 할까? 앨리스 스프링스 전역에는 Royal Flying Doctor Service (이하 RFDS) 의 광고가 붙어 있었는데, 뱀에게 물린 어떤 여성이 RFDS에 전화를 하여 필요한 응급처치 방법을 교육받고, 그 동안 의사가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가 병원으로 다시 후송하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아, 비록 병원이 근처에 없더라도 의사가 직접 찾아가면 되는구나!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에서 원격 의료를 시행한다고 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원격 의료가 기존 연구에서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섬이나 벽지에 사는 분들이나 직장인들이 쉽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언제나 필요할 때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원격 의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우리 나라가 원격 의료가 필요한 걸까? 호주 같이 면적이 아주 큰 나라에서도 원격 진료보다는 헬리콥터를 타서라도 의사가 날아가는데, 이게 한국에서 적합한 상황인걸까?

병원에서 일하는 레지던트 J 씨의 상황을 보자. J 씨는 기침이 심해 이비인후과에 가고 싶었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원격의료의 적응증인 경증 질환 그리고 직장인의 경우이다.) 그러나 J 씨는 당직 때문에 병원을 벗어나지 못했고, 점심시간에 병원을 몰래 빠져나왔다가 콜을 받고 다시 돌아가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일단은 약국에서 기침약을 사서 먹었다. 그러나 기침이 잘 가라앉지 않은 J 씨는 퇴근 후 근처 이비인후과에 들렀고, 직접 인후두를 진찰받은 뒤 처방을 받았으며 며칠 뒤 기침은 씻은 듯이 나았다.

이런 상황에서 원격의료가 J 씨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 처방은 어떻게든 받을 수 있었겠지만 의사는 J 씨를 본 적이 없으므로 증상만 듣고 경험적으로 진료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J 씨의 기침은 나았을 수도 있지만 낫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기침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질병은 엄청나게 많은데, 이를 어떻게 감별할 수 있을까? 다른 경우를 살펴보자. 배가 아픈 것은 경증인가 중증일까? 배가 아픈 것의 원인은 소화불량부터 시작하여 심근경색까지 매우 다양하다. 환자들은 원격 진료만 받아도 될지 아닐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직접 병원에 갈지 혹은 원격 진료를 받을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도서 산간 벽지의 환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응급의료기관이 전혀 없는 지자체가 25 곳이며, 분만시설이 없는 지자체는 57 곳이다. 결국 도서 산간 벽지의 환자들은 응급한 상황이 터졌을 때 다른 어디론가로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의료 인프라 자체에 공백이 상당한 상황에서, 원격의료는 이를 얼마나 메꿀 수 있을까? 명백한 한계가 있는 원격 진료를 굳이 과도한 투자를 통해서까지 실현해야 할까?

비록 장기간의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에 원격 의료가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많이 발표되었지만, 실제로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만 게재되고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논문은 아예 출판조차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몇 년 안에 시행된 대규모 연구에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2010년 NEJM 및 2011년 AHA 에 게재됨.) 결국은 의사나 환자나 그리 이익을 볼 만한 일은 별로 없는데도 위험한 일이 생길 가능성만 높아지는 것이다.

누가 원격 의료를 필요로 하는가? 환자 스스로 이러한 목소리를 낸 것일까? 아니면 의사나 병원이?

정부 및 대형 병원, 기업들은 U-Health 라는 이야기를 하며 원격 의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문서를 전자화 하더라도 결국에는 이를 인쇄해서 보게 되는 것처럼, 기술이 의료 자체의 중요한 성격, 즉 반드시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진찰을 해야 가장 최선의 진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으며 의료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환자의 치료와 안전에 직결되므로, 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서울시 은평병원 정신과 전공의 정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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