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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의 시청타촉 - 한 보호자의 태평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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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호자의 태평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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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을 거닐다 보면 가장 돋보이는 그 날 밤의 몇 명이 있는 것처럼, 응급실에도 그 날 밤의 주인공이 있다. 주인공이 없는 날은 고만고만한 사람만 있는 클럽과 같이 조용하고, 화려한 주인공이 날뛰는 날은 그 날 밤의 응급실도 사람 많은 클럽처럼 정신 나간 모양새가 된다. 그 중 당당히 하루분의 주인공을 맡았던 한 여환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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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하소연을 멈출 줄 모르는 60대 아주머니였다. 들어 보면, 요는 "어지럽다"는 한 마디였다. 같은 증상으로 수차례 각종 외래를 돌아다녔으나 별 진단을 얻지 못했고, 응급실에서도 비슷한 소견이였다. "어지러울 소견이 없습니다. 증상을 지켜보지요." 많이 들었을 이야기였고, 항상 하던 처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당당히 주연을 꿰찼던 이유는 그 표현방식이 너무나 격했기 때문이었다. 등장부터 그녀는 제법 고요했던 새벽 1시에 119 좁은 침대에 끼여 실려와서 우렁차게 "으으아악 어지럽다아아" 라고 소리지르며 들어왔다. (의사들끼리 이야기지만, 어지러운 사람은 겉으로 표가 나거나 어디 붙잡고 소리 지를 곳이 없기 때문에 드러누워 "으악 어지럽다"라고 외치면 약간 우스꽝스러보이기도 한다.) 침대에 누워서 장광설이 시작되었는데, 주연으로 채용해도 충분할 만큼 다양하고 공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어지러운 게 어떻게 낫겠어요" 라는 체념과 "머리속이 꺼지면 땅이 꺼지고 바다가 꺼지고" 류의 횡설수설과 "한 달 갈 어지러움 이였는데 XX교수님은 약을 2주치만 주고" 등의 분노와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어지러웠고" 류의 역사를 전부 포함한 일대기였다. 주변 침대에서 다른 환자들이 조용히 쉬고 있을 새벽 1시부터 아침까지 쉴 새 없이 그녀는 떠들었고, 자기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지나는 의료진을 고래고래 소리 질러 불러댔다. "아이고 간호사님 아이고 선상님 아이고 여기 날 좀 보소". 의료진까지도 어지럽게 하는, 어떻게 보면 증상을 격하게 전달하는 흔한 타입의 환자였다. 그 난리 통에 폭풍 옆에 있던 남편은 들리지도 않는지 묵묵히 앉아있기만 했다. "저 양반은 귀가 먹어서 언젠가부터 들리지를 않는다오." 어쩐지, 하지만 왠지 저 옆에서 살려면 귀가 먹은 것이 오히려 편할 것 같네,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곧 그녀의 언변에 다시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밤이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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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와도 그녀는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그 입은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 설득과 회유에 그녀는 결국 퇴원하기로 했다. 그 긴 과정동안 같이 온 남편은 귀가 먹어서인지 하염없이 묵묵부답이였다. 환자와 이야기할 때도 나를 포함한 의료진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딴 곳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이러한 치료와 세상에 지쳐보였다.

큰 짐을 덜고 스테이션에서 정리하고 있으니깐 그 남편이 혼자 나타났다. "퇴원 수속은 어떻게 합니까" "저기에서 저렇게 수납하고 저리 가서 약 받아서 저렇게 하세요." "아 여기에서 이렇게 수납하고 이렇게 하면 된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엇?"

그렇다. 남편은 들리는 사람이었던 거다! 의학적 진단명으로 치면 선택적 청각 장애 (Selective hearing impairment) 쯤 되겠다. 나는 그 순간 카이저 소제가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였던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저런 문제해결 방식도 있는 것이다.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고, 귀가 들리는 생生은 괴로우니, 남은 생은 귀머거리로 편하게 살겠다는 해결책이였다. 그가 들리는 인간이여서 당했던 일이 얼마나 서러웠을까. 평생 그 대답들을 하다가 얼마나 지쳐버렸을까. 또 그 연기는 얼마나 고심했는지 몸에 밴 듯 자연스러운지. 그가 내린 결단은 비밀스러웠고, 소극적이였고, 심히 반항적이였다. 껄껄, 나는 해가 밝게 뜬 아침 당직실에서 크게 실소했다.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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