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소리

남궁인의 시청타촉 -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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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내가 탄 비행기는 착륙하기 위해 구름 위로 내려왔다. 때는 한 낮이였고, 나는 마침 창가쪽에 앉아서 밝은 빛과 함께 넓은 축적에서 좁은 축적으로 좁아드는 공항 근처의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도는 낮아져가고 산과 들의 모양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발 밑에 있는 철 바닥이 그 사이에 긴 허공을 가로질러 땅으로 처받는 상황을 유희로써 가정했다.

이 비행기의 추락 속도는 중력가속도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론상으로 중력가속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갈 수록 높아진다. 만 미터에서 떨어지는 것과 천 미터에서 떨어지는 것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기의 저항이 있으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일정 이상 낙하해서 속도가 붙으면, 적당한 공기의 저항이 가해져 중력 가속도를 지워낸다. 고로 사람을 만 미터에서 떨어뜨리는 것과 천 미터에서 떨어뜨렸을때 결국 비슷한 속도로 땅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을 십 오미터 높이에서만 떨어뜨려도 대부분 죽는다. 십 오미터 지점은 저어어어 아래 있다. 하지만 어차피 감당할 수 없는 힘이 나에게 강해질 것이라는 점과, 무중력속에서 만 미터로부터 떨어지는, 거의 무한대의 힘이 나에게 강해지지는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안심하자. 이것은 죽을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괜히 생각한 것은 아니다. 희망이 있다.

일단 나의 신체 조건은 좋지 않다. 평범하거나, 그보다는 약간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근육질이든 십 오미터를 넘어간 곳에서 떨어지면 백이면 백 다 죽는다. 여기서도 공평하다는 점 뿐이지만, 약간의 희망이 보인다. 나는 나쁜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나의 강점은 내가 전신의 외상을 볼 수 있는 의사라는 점이다. 이 장점을 살려야 한다.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전신에서 가장 지켜야 하는 곳은 무조건 머리통이다. 단단한 두개골로 둘러 쌓여서 뇌를 담고 있는 두개골. 머리통이 깨지면 살아남더라도 그리 재미 없는 삶이 기다리고 있다. 아니, 재미 없는 삶보다도 추락시 의식을 잃으면 이차 폭발이나, 외상으로 죽을 가능성도 높다. 어디보자... 얼마전에 옥상에서 계란을 떨어뜨려 깨뜨리지 않는 대회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지. 근데, 우승자가... 아. 걔네 참가자들은 결국 계란을 몽땅 깨먹고 말았지. 순간 내 머릿통이 그 화면에서 비췄던 노른자가 흥건이 비춰 나온 계란으로 상상되었다. 아. 잊은걸로 하자. 그냥 머리통을 최대한 감싸는 것으로 하지. 팔 다리정도는 몇 개 부러져도 괜찮아. 근데 전에 20m 에서 떨어진 건장한 청년은 엉덩이로 떨어졌는데 결국 전신이 다 부러져서 죽었잖아. 아, 이것도 잊은 걸로 하자. 내 뼈는 조금 더 두꺼울 수도 있으니까. 근데 그 사람은 좀 잔인했어. 아 잊어버리라니까.

그렇다면 몸을 최대한 웅크려서 극도의 힘을 견뎌내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자세를 취해야겠다. 손으로 감싸면 안되고 그나마 단단한 팔 뼈 두개로 감싸야지. 그리고 머리에도 추락하는 동안 뭔가 뒤집어 쓰는거야. 근데 목을 너무 안쪽으로 빼면 목 부러질수도 있어. 목 부러지면 역시 재미 없는 삶이 기다리고 있지. 아니면 즉사하거나. 아, 넥 브레이스를 하면 되겠다. 하지만 어디서 구한다. 아, 임펙트시에 목에 힘을 주는 방향으로 해결하자. 쓸 수 있는 목 주위 근육을 다 써써 얏. 이렇게. 그럼 다리도 꼬아야 할텐데, 그러면 옆구리가 비잖아. 옆구리를 맞으면 역시 재미 없다고. 하지만 복부도 어차피 맞으면 재미 없는 것은 똑같으니까 그냥 다리는 정상적으로 웅크리자. 엉덩이는 부딪히면 그나마 좀 나으니깐 밖에 두어야지. 하지만 그때 20미터에서 엉덩이 부딪힌 사람이 죽을 때... 야! 그만 잊으라니까.

자 그러면 최대한 노력해서 부딪힌 다음 내가 눈을 뜨느냐에 달렸군. 내가 머리를 잘 지켰으면 눈이 떠질 것이고, 노른자가 날아갔으면 눈이 떠지지 않을 것이지. 눈이 떠지지 않을 경우 선택지는 없으니깐 생각할 필요도 없군. 눈을 뜨면 사지를 하나씩 움직여 평소 환자를 보듯 신체 검진을 하는거야. 통증을 다 취합하고 하나씩 만져서, 일단 만질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성공이니까. 손상되는 진단명을 나열하고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을 판단해야지. 움직일 수 있다면 기어서라도 최대한 이차 폭발이나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 비행기 바깥으로 나가는거야. 내부 장기 출혈이나 주요 골절이 있어도 어쨋든 기어갈 수는 있으니까. 출구가 앞에 잘 나와주어야겠지. 비행기가 찢어진 틈 같은 것이 보인다면 더 좋고. 근데 찢어진 틈에 내가 있었다면? 그건 내 몸이 찢어져 있다는 건데, 어차피 눈이 떠지지 않는 상황일테므로 생각할 필요 없어. 근데 그때 그 몸 찢어진 환자 기억나? 그만 그것도 잊으라고 했니 안했니! 머리만 다치지 않았으면 대부분 조금씩은 움직일 수 있으니까. 어떻게든 비행기 밖으로 나가서 골절된 부분을 스스로 고정하고 구조를 기다려야지. 고정한다기보단 그냥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근데 내부 장기 출혈같은게 온다면 볼륨은? 아, 음료수를 달라고 해서 배 터지도록 미리 마셔두어야겠다. 한 2~3분쯤은 더 버틸 수 있을꺼야. 자 다 됐다. 그러면 연습해볼까? 의자 밑에 이렇게 들어가서 어깨를 뻗고 팔꿈치는 최대한 구부리고 머리를 감싸고 다리도 웅크려 배를 감고 패딩과 담요는 머리에 감고 임펙트시에 목에 힘을 따아...

"쿵"

이 비행기는 OO공항에 착륙했습니다. 현지 시간은 1시 31분...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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